'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이라는 길고도 특이한 이름은 1984년 문승현, 김제섭, 조경옥 등 대학노래패 출신 초창기 세대들이 故 김민기 선배의 도움으로 낸 첫 번째 음반의 타이틀에서 기원했다. 이름의 지은이는 故 김민기 선배의 연우무대 동료였던 연출가 이상우 선생이었다고 한다.
< 노래를 찾는 사람들 > 음반은 성공회대 김창남 교수가 썼듯이 "노래패 1세대가 대학의 울타리를 벗어나면서 노래운동의 출발을 알리는 하나의 선언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 음반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 때문에 음반사가 "창고에 묻어두면서 사실상 사장되었다.". 이후 1987년 6월 항쟁에 이어진 민주화의 국면에서 우리 삶에 밀착된 진실한 노래의 사회적 요구가 높아졌고, 이를 계기로 1집 음반 참가자를 중심으로 동명의 노래모임을 결성해 그해 가을 첫 공연을 가졌다. 이 공연을 필두로 해마다 두 차례의 정기공연과 수많은 민주단체, 대학교, 사회단체, 노동 현장에서의 공연을 통해 폭넓은 대중과 만나며 노래운동의 대중화에 앞장섰다. 대중예술의 갈래로서 노래의 사회성과 역사성을 담아내며 어두웠던 시대의 아픔을 표현한 노찾사는 80년대를 살았던 이들이 정서적으로 교감하는 문화지대이기도 했다.
노찾사는 광범위한 노래운동 대중화 시기의 선두 주자였다. '광야에서', '솔아 푸르른 솔아', '사계', '그날이 오면', '임을 위한 행진곡' 등 시대를 뛰어넘는 노래들과 함께 일터와 거리, 대학을 오가며 수많은 공연과 음반으로 대중과 만났던 연행 집단이었다. 2집(1989)과 3집 음반(1991)은 당대 대중가수의 인기를 훨씬 뛰어넘는 사랑을 받으며 노래운동의 대중화에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특히 2집의 놀라운 성공과 더불어 노찾사의 출발점이었던 1집도 다시금 조명받았다. 노찾사는 1997년까지 총 6장의 단독 음반을 제작∙출시했으며, 2004년에 20주년 기념음반 재발매와 함께 활동을 재개했다. 재개 후에도 시대를 가로지르는 사회의 정의와 건강한 삶을 노래하며 약 90회의 공연에 참여했다.
노찾사는 대중음악인으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간 故 김광석, 안치환, 권진원의 요람이었다. 그들 외에도 노찾사 출신으로 적지 않은 이들이 창작∙연주∙음반 기획∙공연 기획 등 각종 음악 분야에서 활동을 이어갔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아름답고 충만한 삶을 위한 노래,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한 행동으로서의 노래를 찾고 전파하는 노찾사의 작업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고자 한다.